욜로 라이프, 그리고 여기자의 삶

 강경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번 뿐인 삶(You only live once)’. 그 영어 문장 첫 머리 글자를 딴 ‘욜로’(YOLO)가 현대인의 라이프 트렌드가 됐다. 2011년 캐나다의 힙합 스타 드레이크가 자신의 노래 ‘더 모토’에서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nigga, YOLO’를 외치면서 이 단어가 대중화됐다. 당신 인생은 딱 한 번 뿐이니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현재 행복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고 실행에 옮기라는 삶의 방식이다.

사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양인들의 삶은 ‘욜로’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부터도 원래가 ‘욜로 라이프’였다. 가족의 중심은 자녀가 아니라 부부다. 내 인생은 내 인생, 자식 인생은 자식 인생이다. 자식도 성인 나이 되면 옆집 총각, 앞집 아가씨 대하듯 쿨하게 독립시킨다. 주말이면 세상 무슨 일 있어도 가족들과 근처 공원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낸다. 1년 열두달 일하기 위해 사는게 아니라 한달 바캉스 가기 위해 일년 열한달 열심히 일한다. 아내와 가족 위해 장관직도 미련없이 떠난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이제 남은 삶은 아내를 위해 살겠다”고 했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 이 욜로 라이프가 2017년 대한민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욜로 라이프를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도 넘쳐난다. 남자들끼리 욜로 라이프를 찾아나섰더니 거나하게 취해버린 ‘술로라이프’가 됐다고도 하고, 욜로 라이프 살겠다고 전국 방방곡곡 경치 좋은 곳 찾아다니며 맛난 음식에 카드 확 그었다가 ‘골로 라이프’가 되어간다는 젊은이들 푸념도 나온다. ‘꼰대’ ‘아재’로 비하되던 중년들도 욜로를 외치며 타이어 같던 뱃살 대신 식스팩 몸매에 도전한다.

경제성장 세대의 삶은 확실히 달랐다. 오늘을 즐기라고 하지만 사실 오늘 즐길 만한 거리도, 물적 심적 여유도 별로 없었다. 나의 오늘을 희생하면 대신 더 나은 우리 가족의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고 일에 뼈를 묻었다. 안 먹고, 안 입고, 안 써서 아낀 돈은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자식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르고, 성장률은 더뎌진다. 오늘보다 내일이 크게 더 나아질 것도 없어 보인다. 부모가 안 입고 안 쓰고 자식한테 투자했는데 취직은 안되고, 어렵게 쟁취한 일자리도 ‘난 부모 세대처럼 살 수 없다’며 사표 던진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 아이 키우느라 온전히 내 인생을 다 바치는 삶이 ‘인생 필수과목’이 아니고 ‘선택과목’이라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길어진 수명에 부모들도 자식에 ‘묻지마 투자’를 재고하게 된다. 부모 세대에도, 자식 세대에도 욜로 라이프가 빠르게 호응을 얻어가는 이유다.

그렇다며 여기자의 삶은? 과연 욜로 라이프가 가능할까?

나의 기자 인생 26년을 돌아보면 ‘욜로 라이프’와는 거리가 먼 삶 같기도 하다. 일-가정 양립은 커녕 집에 돌아가 잠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기자로 살았다. 집 체류 시간 자체가 짧았다. 사회 전체가 주 5일 근무로 바뀔 때도 주 6일 근무는 변함없었다. 다들 퇴근해서 친구 만나 편하게 회포 푸는 시간에도, 도로 회사 들어가 기사 챙기고, 지면 챙기느라 기자로서의 삶을 제외한 사적 영역은 꿈 속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밤 10시 회사에서 취재원한테 전화 걸어 팩트를 확인하면 “아니, 이 시간까지 회사에서?”하면서 측은하다는 인사말이 수화기 저 너머에서 먼저 튀어나온다. 편집국 있을 때보다는 심야 판갈이가 적은 논설위원실 올라와서는 저녁 7, 8시 퇴근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회사를 나서려면 뭔가 야간수업 빼먹고 땡땡이 치는 여고생처럼 아직도 마음이 불편하고 찜찜하다. 욜로를 일에 얽매이지 않고 여유를 구가하는 삶이라고 규정한다면 분명 나의 삶은 욜로 라이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신문기자 일은 고달프긴 해도 매일매일이 도전이다. 출입처가 바뀌고 부서가 바뀌는 것은 마치 직장을 옮긴 것 같은 긴장감을 준다. 새롭고 낯선 영역에서도 빠르게 업무를 숙지해 기사를 써야 하니 교만할 틈이 없고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그걸 채워가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매일 마감이 코 앞에 닥치니 오늘 기사를 내일로 미룰 수도 없다. 그럼에도 꽤 재미있었다. 결과에 대한 반응도 빨리빨리 오니 성취감도 수시로 맛봤다. 기자가 심심한 세상이 되어야 좋은 사회일텐데 지금도 끊임없이 분노하고 비판할 것들이 쏟아진다.  

도전과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고 힘들다면서도 이 일을 놓지 못한데는 일이 주는 매력이 상당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번 뿐인 삶, 온전히 나를 던져서 도전한다는 관점에서 욜로 라이프를 규정한다면 나를 포함해 많은 여기자들의 인생도 꽤 욜로 라이프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욜로 라이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매일 전투 치르듯 치열한 여기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이 욜로를 가능케 하는 흥미로운 도전일 수도, 욜로를 방해하는 고달픈 노역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